책을 만지는 일을 하다 보면, 가끔 문장 속에서 이질적인 단어를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정갈하게 다듬어진 글줄 사이에 불쑥 끼어든 외래어를 발견하면, 마치 잘 차려진 한식 상차림 위에 뜬금없는 소스 한 방울이 떨어진 듯한 기분이 들곤 하죠.
에디터로서 원고를 교정하다 보면, 때로는 그 이질감이 글의 리듬을 깨뜨리기도 하고, 때로는 세련된 분위기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오늘은 우리가 일상과 문학 속에서 무심코 사용하는 외래어들이 과연 우리의 ‘읽는 경험’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그 미묘한 경계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1. 익숙함이라는 이름의 편리함, 혹은 함정
우리는 참 많은 외국어를 일상 속에 품고 삽니다. 카페에서 주문할 때나 업무 메일을 쓸 때 사용하는 단어들 중 상당수가 이미 우리말처럼 굳어져 버렸죠. 하지만 그 편의성이 높아질수록, 우리가 가진 언어의 스펙트럼은 조금씩 좁아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가 생깁니다.

제가 최근에 작업했던 한 독립 출판물의 에세이를 예로 들어볼게요. 작가는 자신의 감정을 설명하기 위해 ‘멜랑콜리하다’라는 표현 대신, 그보다 훨씬 깊고 푸른 빛을 띠는 우리말 표현들을 고민하며 문장을 고쳐 써 내려갔습니다.
* 외래어가 주는 느낌: 세련됨, 트렌디함, 즉각적인 전달력
* 우리말이 주는 느낌: 결이 살아있는 섬세함, 여운이 남는 울림, 깊은 정서
물론 모든 상황에 우리말만 고집할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테크닉’이라는 단어가 주는 전문성이 필요할 때도 있으니까요. 다만, 단어의 선택이 글의 온도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2. 문장의 결을 해치는 불필요한 침범들
에디터로서 가장 경계하는 순간은, 충분히 아름다운 우리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습관적으로 외래어를 남발할 때입니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글의 흐름을 끊기게 만들고, 저자의 어휘력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습니다.
제가 원고를 검토하며 중요하게 체크하는 포인트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대체 가능한 단어의 존재 여부: ‘컨펌’ 대신 ‘확인’, ‘피드백’ 대신 ‘조언’이나 ‘반응’을 쓸 수 있는가?
* 맥락에 맞는 적절성: 전문 용어가 아닌데도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외래어는 없는가?
* 문장의 리듬감: 외래어가 들어옴으로써 문장의 호흡이 갑자기 끊기지는 않는가?

예를 들어, “그 공간의 무드(Mood)가 좋다”라는 문장보다 “그 공간의 분위기가 포근하다”라고 했을 때, 독자는 그 공간의 공기를 더 입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됩니다. 언어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를 넘어, 이미지를 그려내는 붓과 같기 때문입니다.
3. 단어 사이의 여백을 채우는 법
결국 좋은 글이란, 적재적소에 알맞은 단어를 배치하여 독자의 마음속에 저자가 의도한 풍경을 온전히 구현해내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무분별한 외래어 사용은 그 풍경에 불필요한 노이즈를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가끔 퇴근길, 서점에 들러 이름 모를 독립 출판물들을 훑어보곤 합니다. 어떤 책들은 아주 생소하고 아름다운 우리말 단어들로 제목을 장식하고 있고, 또 어떤 책들은 현대적인 감각의 외래어를 사용하여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그 경계에서 느껴지는 언어의 미학을 발견하는 것은 에디터로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가 곧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 됩니다. 오늘 여러분의 문장에는 어떤 단어들이 머물고 있나요? 혹시 너무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소중한 결을 가진 우리말들을 밀어내고 있지는 않은지 가만히 되짚어보게 되는 밤입니다.